마치 어제일 처럼 생생한데, 벌써 유럽에서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2주 넘게 흘렀다.
그때의 기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렘, 불안, 초조, 두려움, 황홀함, 행복, 신기함, 무서움..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날들의 이야기.
지금은 마음이 헛헛하고 아련하다. 그날들의 기억들은 다 모두 생생한데, 이젠 나에게 없다. 홀로 유럽의 길거리를 걸으며 햇살 좋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생각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잠시 어지러워 벽에 기대어 쉬고 하던 날들이 꿈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 정도 되었을 때, 나의 동네 친구가 친구들이랑 같이 유럽 여행을 간다고 신나서 얘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나는, 3개월 연장 제의를 받았었고 이를 연장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 친구가 유럽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당시 저가로 유럽을 가는 항공이 엄청나게 싸게 나온 상태여서 어? 이 돈이면 나도 가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한테 나도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다. 친구는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물어본다고 했고, 그들은 모두 나와 중학교 동창이지만 얼굴은 알아도 말은 섞어본 적은 없는, 하지만 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정말 많아서 서로 내적 친밀감은 엄청 높은 그런 상태였다.
생각보다 흔쾌히 그들은 허락해 주었고 나는 대뜸 파리행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았고 내 독단적으로 행동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연락을 하던 오빠는 내가 남자들과 여행을 간다는 말에 나에게 정을 떼버렸고, 취업 준비를 하던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면접 기회들이 찾아와서 그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나 놓고 고민하던 순간들이 있었고, 엄마는 유럽을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안된다고 했고, 그래서 못가나 하던 찰나에 독일에 사는 대학교 동아리 언니와 연락이 닿아서 같이 독일이랑 프라하 여행을 가기로 했고, 애초에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들과 버스, 기차, 숙박, 티켓을 다 예매했는데 절반 이상은 환불도 못해서 백만 원 넘게 날리기도 하고, 그렇게 정말 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나는 어쨌든 파리에 갔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유럽에 가기를 꿈꿨었고 대학 때 이를 실현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무산되고, 또 그 이후에 비자에 관련해서 미국에 가려고 했던 길들이 막히는 일들이 있었고, 해외에 나가려고 했던 시도들이 몇 번 막히면서 이번에도 뭔가 알게 모르게 불안함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연장 제의를 위해서 나에게 여러 번의 커피챗을 제안했고, 고민도 많이 했었다. 리드님께서 취업 준비를 하려고 그만두는 거면 차라리 여행을 가라! 고 하시는 바람에 솔직히 속 시원한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에 가게 된 것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날들이었다. 물론 그때 돈을 내가 가진 돈을 거의 모두 다 써버려서 지금 텅-장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나는 로마에서의 2박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일정이었는데, 너무 아쉬워서 로마에서 비행기를 일주일 연장했다. 하지만 카운트다운을 콜로세움에서 보내면서 마약 한 사람들, 술 취한 사람들, 사람에게 폭죽을 쏘고, 소매치기하려는 사람들, 몸을 만지는 사람들, 칼부림을 보면서 하.. 이제 로마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하면서 후회했다가, 낮에 본 로마는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로마를 미워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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